퇴사를 했다.

진작에 예정된 이벤트였고 뒤도 안 돌아보고 미련 없이, 쿨하게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시원섭섭했다. '지나고 나니까 추억'이라는데 이렇게 빨리 미화가 된 건가.
참으로 길었다. 2년을 채울 계획은 아니었는데.
업무의 강도가 높아서 그런 걸까, 분명 입사한 지 얼마 안 지났는데 진작에 1년은 채운 것 같았다.
수많은 화보 촬영의 한 귀퉁이를 담당했다. 횟수를 세어보니 100개 남짓되더라. 몇 백개의 브랜드를 컨택하고 몇 천 개의 제품들을 협찬받아 만져봤다.
1년 동안 보는 눈을 많이 길렀고, 좋은 기회에 내 이름으로 작은 아이템 화보를 제작할 기회가 생겼다가 사라졌다. 시시콜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여러 상황들이 맞물려 꼬였다.
이때부터 동력을 잃었던 것 같다.
2년 차가 시작되었다.
스스로 기회를 창출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달릴 힘이 없었다. 나는 지쳤다. "업무 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할 수도 있잖아?"라고 묻는 철인들도 있겠지만 난 한없이 펄럭거리는 깃발 같은 사람이라 그 시간에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데 집중했다.
어떻게 버텼지.

사실 묵묵하게 견디는 건 내가 제법 잘하는 일이다.
방법이라고 한다면 일단 '이 짓을 왜 하고 있는지 의미를 찾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이 나에게 어떤 자양분이 되는지 계속 생각하다 보면 그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의미가 거창할 필요가 없는 게 내가 찾았던 의미들 대부분이 '이 또한 좋은 경험일 것이다'에서 시작하는 낙천적인 생각이었다. 실제로도 지나고 보면 도움 안 되는 경험은 없는 것 같다. 생각하다 시간이 흐를 수도 있고.
그리고 중요한 건 '최대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는 것.'이다. 하다못해 집에서 헤드폰으로 ROCK을 들으며 헤드뱅잉이라도 해야 한다. 동기부여도 하루이틀이지, 과열된 뇌는 직접적으로 식혀야 한다.
나는 그래서 시간을 쪼개 클라이밍을 했다. 9시에 퇴근을 한다면 바로 5분 거리 암장을 찾아가 30분이라도 벽을 탔다. 그게 나의 생존법이었다. 앞서 이야기한 철인들의 자기계발... 스트레스 해소도 자기계발이다 망할.
이렇게 클라이밍을 다니지 않았다면 2년은커녕 진작에 나는 무너졌을 것이다.
그렇게 '이번에도 지나가겠지' 하며 버텼다. 월세는 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인내하는 두 가지 방법 중에 하나가 충족이 안되기 시작했다.
이 짓을 왜 하고 있는지 의미를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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