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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퇴사 에세이 (2) - 내가 하고 싶은게 뭐였더라.

by 잠실샌드위치 2025. 8. 7.
하고 싶은게 사라졌다.

 

내가 뭣 때문에 이 회사에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까먹었다.

이 회사에 들어온 이유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무런 상관이 없어졌다. 앞으로 나갈 동력을 잃었다는 뜻이었다. 그냥 관성처럼 회사 업무를 쳐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감사하게도 하고 싶은게 많은 사람이었으며, 뒤를 생각하기 보다는 실행을 옮겨보던 사람이었다. 뮤지션들의 영상을 보고 '나도 공연을 해보고 싶다'며 버스킹을 했다. 해외에서 영어를 쓰며 살아보고 싶다고 돈도 없이 호주로 떠났다. 그러던 내가 하고 싶은게 없어지니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해봤다.

 나는 옷이 좋았다. 단순하게 품질 좋은 옷을 좋아하기보다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좋았다. 이 옷의 디자인이 왜 이렇게 만들어졌고, 어느 부분에서 소비자들의 공감을 받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브랜드의 헤리티지가 되는지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이 회사에서는 수많은 브랜드와 의상들을 직접 만지고 느껴볼 수 있겠다.'싶어 입사를 했다.

 

플랫폼 안의 왠만한 브랜드들을 겪어보고 느낀 건 트렌드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미니멀리즘이 시장을 휩쓸고,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올드머니', '조용한 럭셔리'라는 이름으로 부상하자 저렴한 가격의 도메스틱 브랜드들도 '올드머니'를 논하는 아이러니가 펼쳐진다. 그러다 트렌드는 '드뮤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탈바꿈한다. 하지만 화보에 쓰이는 착장은 바뀐게 없어 보였다. 나는 이 흐름을 공감하지 못했다.

 

시장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이 옷이 저 옷같고 패션에 대해 점점 무감각해졌다. 브랜딩이 뭔지 마케팅이 뭔지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졌다.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도 당연히 알기에 업무적인 성장도 원했으나, 다음 스텝은 이뤄지지 못했다.

 

패션에 대한 관심도, 커리어의 성장도, 무엇 하나 충족시키지 못하고 업무시간만 늘어나니 버티는게 고작이었다.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이대로 있으면 안되겠다.

가을쯤, 가장 정신 없는 기간에 무료함은 절정에 달했다. 퇴사하겠다는 말을 매일 10번도 더 뱉었다 삼켰다. 더 악착같이 클라이밍장에서 벽에 매달려 있었다. 하고 싶은게 없어보니, 목표를 위해 달려갈 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달았다.

 

새해를 시작할 무렵, 이대로 가다간 진짜 아무것도 못하고 바닥으로 꺼질 것 같아서 이를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내 경험상 이런 우울감은 벗어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빠져나오기야 하겠지만 그 전에 무슨 수를 써야한다.

 

그래서 다시 한번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을 찾고, 이 회사에서 무얼 얻고 가는지 등등, 나의 다음 스텝을 위해 정리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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